나도 한국사람이다보니까 각자 먹은 만큼의 돈을 걷는 (혹은 따로 내는) 더치페이 문화에 익숙하지가 않다.
그러니까 1차는 내가 내고 2차는 너가 내는 방식이거나 혹은 이번에 너가 쐈으니 다음 번엔 내가 쏜다는 문화에 익숙해져있다.

남녀관계에서는 물론이고 동성관계에서도 내가 먹은 것은 내가 낸다는 방식의 더치페이에 익숙하지가 않다.
이성적으로는 내가 먹은 것을 내가 내는 방식이 합리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거부감이 드는 방식이랄까?

친구나 동생들에게 베풀고 싶고 형들에게 한번쯤은 동생인 내가 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그러고 싶은데 주머니 사정상 혹은 다른 사람이 선수처서 그러지 못했을 때는 알게 모르게 미안하고 루저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치페이는 루저페이라는 말에 딱 아니다라고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저 말을 주로 쓰는 사람들이 여자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감성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말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비단 남녀간의 데이트 문제 뿐만 아니라 동성간의 관계에서도 더치페이가 합리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내가 실행할 생각은 없었다.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계산하는 방식을 말한다)

적어도 메갈과 워마드를 나에게 소개시켜줬던 극단적인 가짜 페미니스트였던 어린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나보다 어리기도 하고 수입이 안정치 않아서 데이트 비용의 거의 100%는 내가 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 여자친구가 내려고 하는 것을 내가 저지했던 것이니 만남에 문제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초기에는 데이트비용에 대한 서로의 견해차이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애초에 더치페이의 개념을 각자가 먹은 부분을 각자가 계산하는 것 혹은 n분의1 수준으로 알고 있었다.
아주 우연히도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더치페이의 개념을 알게 해주었다.

"남자가 밥을 샀으니 여자보고 커피를 사라고 하는 식의 더치페이는..."

나는 여기서 우리 사이에 상당한 견해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직감하였다.
물론 저런 방식도 일종의 약식 더치페이라고 동의는 하지만, 그보다는 서로가 돈을 꺼내서 주고 받는 것은 왠지 불편하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베풀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순수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저 말을 한 당사자도 내가 1차 2차 3차 다 쏘려고 하면 본인이 한번은 내려고 하였으니까)

당장 친한 선후배동기를 만나도 베풀고자 하는 마음에 자기가 계산하려고 하는데, 봐도 봐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에게는 더하면 더 했지 다를까? 마찬가지로 여자 입장에서도 남자친구에게 베풀고자 하는 마음은 친한 선후배동기들에게 보다 더하지 않을까?

그러다보니 나의 연애에서는 대체로 7:3정도로 비용을 부담했었고 딱히 이것을 더치라고 생각하지도 그렇다고 일방이 부담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물론 상대에 따라서 가변적이지만, 9:1도 4:6 수준도 한번씩은 있었다.)

바로 이 극단적 가짜 페미니스트였던 이전 여자친구의 이런 더치페이에 대한 인식을 듣고 나는 조금 놀라서 되물었다.
"더치가 자기가 먹은거 자기가 계산하는거 아닌가? 그건 서로 베푸는거잖아?"
그 대답이 놀라웠다.
"데이트 비용은 원래 남자가 내는게 맞지. 내가 더치를 한다고 생각해? 당연히 오빠가 내야 하는건데 내가 배려해주는거지"
'나는 사랑하는 마음에 베풀고자 행한 행위가 이 얘한테는 그냥 당연한 것이었구나'
굉장히 정떨어지는 말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메뉴를 골라도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 보다는 여자친구의 기호로 좋아하는 것을 골라서 같이 먹을 수 있게 하였다고 생각했다.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그냥 남자가 내는 것이니 비용 신경 쓸 필요없이 하나 더 시키면 되는 거고 많으면 남기면 되는 일인데 남자친구를 생각해서 본인이 배려해준 것이었다.

여하튼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더치페이의 필요성을 느낄지 모르겠다.

비용은 거의 99:1정도로 지불했는데... 그 1이 계산할 때 너무 자괴감 들더라. 내가 저렇게 어렵고 나보다 어리기까지한 얘한테 얻어먹을 정도는 아닌데... 하면서
난 그때 이 극단적 가짜 페미니스트인 전 여자친구에게 루저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공감이 됐다.
'카페에서 너가 1만원 계산했을 때 내가 정말 루저 같았어'

아 물론 그 얘가 괜찮은 수입을 갖고 있다면 루저라는 그 인식을 조금은 합리화 할 명분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더치페이를 루저페이라는 극단주의자들의 말을 들으면 발끈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내심 그런 상황에서 루저가 된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나?
굳이 극단적 가짜 페미니스트들이 하는 말에만 발끈할 필요는 없는거 같다.

데이트에서 더치페이가 일반화 되려면 우선 지인관계에서부터 더치페이가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본다.

가벼운 사이가 아닌 미래를 함께 할 생각이 있는 사이라면 데이트 통장을 만드는 것에는 동의를 한다.
같이 쓴 비용에 대해서 서로 살펴보고 함께 지출함으로써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거리가 생기고 또 향후 가족을 이루었을 때 지출관리에 대한 계획을 세울때도 아주 큰 도움이 되기때문이다.

위에 내가 든 사례와 같이
서로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지만, 사실은 서로가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서로 공감한다는 것은 중요하고 그래서 데이트 통장을 만들어서 함께 공감하는 것은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아몰랑 복잡한건 집어치워"
이런 식의 사고를 하는 남녀라면 뭐... 지갑에 돈 있는 사람꺼 쓰고 없으면 카드 긁고 그렇게 살면 되겠지.

우연히 보게된 오래된 일본 만화의 한 장면이다.
나는 상당히 어색한 느낌이 들어서 이 장면을 몇 번 다시 봤다.

카페에서 여자애가 쪽지를 남기고 자리를 먼저 뜨는 장면에서 동전을 놓고 가는 듯한 장면이 있네?
설마 먼저 자리를 뜨면서 자기가 먹은 음료값을 주고 가는 건가?
아니면 이전 장면부터 테이블에 동전이 있었나??

가끔 외국 영화를 보면 먼저 나간 사람이 계산을 하는데 나중에 나가는 사람도 또 계산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나는 그런 것들이 촬영상 생긴 NG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이 장면을 보니까 그게 지가 먹은거 지가 계산한건가? 싶기도 하다.

이런 더치페이는 애인사이든 친구사이든 떠나서 나에겐 좀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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